그림은 자신이 멈춰있더라도, 감상자의 발걸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감상하기 위해 발걸음을 옮길 수 있는 좌대를 만들고 싶었다. 감상자가 한 바퀴 돌아볼 수 있는 동선을 가진 4면 좌대를 제작하였다. 그림을 놓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어졌으나, 이 좌대는 현재까지 목적 달성에 실패하였다. 나는 쉽사리 그림을 그릴 수 없었고, 결국 순서가 뒤집혔다. 하지만 나는 이 좌대에 놓일 그림을 찾고 싶었다. 스스로에게 정말 어려웠지만, 언젠가 4개의 면이 꽉 차 있는 좌대를 상상한다. 그렇게 막연하게 생각한다. ‘빈 좌대는 채워져야 한다.’ 나는 임시방편으로 삼각형의 도자기들을 크기순으로 좌대에 올려놓았다. 우선은 그것이 좌대를 기능하게 하는 최선이었다. (김아주의 작업노트 中)
임시방편으로 채웠다는 좌대는 누가 봐도 실패하지 않아 보인다.
김아주의 작업은 보는 이의 눈을 단번에 사로잡고 여기저기로 관객들을 이동시키며 혼을 빼놓고 내보낸다.
최고의 공격은 방어라고 하듯 김아주의 작업은 읽을 수 없는 제목과 철저하게 계획된 듯한 그의 공간에서 어딘 가 모르는 강한 방어기제가 느껴진다.
그 속에서 보여지는 강한 결핍은 김영현의 작업에서 느껴지는 것과 유사하다.
그는 얇은 천에 빼곡히 담은 그림을 고정하지 않은 채 제시하는 방법을 선택해 조금 더 공격적이게 환상을 부각시키기도 혹은 그 착각을 무너뜨린다. 하지만 동시에 그 연약한 천이 어딘가에 안전하게 정착하기를 바라는 듯한 결핍이 동시에 느껴진다. 겉보기에 강렬한 것들이 실은 자기를 방어하는 기제가 강한 것처럼. 이렇듯 방어의 힘이 강한 두 작업이 어우러진다면 그 결핍이 비소로 진짜 힘을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채워지길 바라는 좌대와 정착하길 바라는 그림, 그들의 결핍이 조화롭게 그리고 부드럽게 제시되길 희망한다.
김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