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지 않는 사람들전시 서문, 유영공간, 2023

인상 깊은 말들로부터


종종 어딘가 세게 맞은 것같이 강한 말로부터 생각이 번지는 순간들이 있다.
잠시 동안 뇌가 정지된 듯 복잡해지다가 차분히 생각에 생각을 더한다. 주로 잠이 들기 전 나에게 보내는 메시지에 이러한 조각들을 전송한다. 그렇게 모아둔 조각들로 출발한 생각은 줄곧 평소에 관심 있게 생각하던 단어들과 함께 버무려질 때가 많다. 이번 전시 또한 그러한 과정 중 머릿속에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를 붙잡고 늘어진 결과물들이다.

하나. 대학시절, 수업을 듣던 중 내게 인상 깊게 남은 피드백이 있었다.

“영현 씨의 그림에선 어딘가 모르게 죄의식이 느껴지는 기분이에요.”

물론 그 당시 완전무결한 인간을 그려내고 싶어 죄를 지을 수 있는 신체기관을 생략하고 코만 남은 형상을 그리긴 했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너무 신선하다 못해 어딘가 정곡을 찔린 기분이었다. 죄의식이라는 건 죄를 스스로 느끼고 깨닫는다는 것인데 나는 그 기준이 상당히 높은 것 같긴 하다. 하여 그게 삶에서 나를 피곤하게 한다. 창작은 자유라지만 나는 그것에서도 딱히 자유롭지 못하다. 내가 만든 창작물이 나를 드러낸다는 생각 때문인 것이겠지. 그런 이유로 그림 뒤에 숨어 남은 형상에 대해서만 떠들고 싶다는 안일한 생각을 한다.

천사는 인간도 신도 아닌 중간 존재로 흔히 인간의 형상에 날개가 달린 모습으로 그려져 왔다. 겉보기에 인간과 다른 딱 한 가지, 날개 덕에 그들은 인간의 잣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다. 그러니 그들에게 날개는 면죄부와 비슷한 가. 그러나 날개 때문에 그들의 행위에는 천사에게 씌워진 프레임이 작동한다. 자유를 상징하는 날개가 그다지 자유롭지 못한 점은 나와 그림의 관계와 유사하다.

둘. 처음으로 어느 갤러리와 미팅을 했던 작년 초,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나는 받은 질문들에 하나같이 바보 같았다. 그중 가장 후회가 남는 질문 하나가 뇌리에 아주 오랫동안 머물렀다.

“어떤 작가가 되고 싶으세요?”

생각해 본 적 없었다. 여태껏 어떤 작업을 할 지만 생각해 봤을 뿐 어떤 작가가 되겠다는 말은 너무 거대한 포부처럼 느껴져 피했을지도 모른다. 아무 말을 지껄인 후 집에 가는 내내 자신 없는 스스로가 창피했다. 앞으로도 계속 생각해 볼 질문이겠지만 처음으로 개인전을 준비하면서 현재의 내가 되고 싶은 모습은 하나 정했다.

나와 나의 작업의 모습이 마치 단편소설 같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소설은 허구의 것을 마치 있음 직하게 그려내고 진짜 있음 직하지만 허구라는 울타리 안에서 창작의 자유를 얻는다. 또한 작가는 스토리의 의도를 책에 직접적으로 설명하지 않으며 해석은 어디까지나 독자의 몫이다. 꽤 있어 보이는 방패와 적당한 책임 전가, 그러면서도 소재가 일관될 필요 없는 단편이자 크게 보면 각각의 이야기가 또다시 작가의 스타일로 묶인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건 다음 소설은 어떨지 기대가 된다는 점이다. 
앞서 말한 ‘있음 직하지만 허구의 것이고 허구이지만 있음 직함’은 나의 그림의 특징이기도 한데, 이는 내가 중세 시대 종교화에서 자주 모티브를 얻기 때문일 것이다. 성경의 내용이 허구라는 것이 아니라 직접 본 것이 아닌 이야기를 상상하며 그렸기에 생기는 왜곡들을 말하는 것이다. 물론 지금은 간접적으로 보고 따라 그릴 수많은 방법들이 있지만 나는 최대한 예전 종교화를 그리던 방식을 따르려 노력한다. 최소한의 자료는 나를 모델로 사진을 찍어 도움을 받고 그 이외의 것은 최대한 보지 않고 머리와 손으로 그려낸다. 그렇기에 어딘가 어색함이 많지만 그 어색함이 주는 주관적 느낌이 왠지 정직한 상상 같아 좋다.

셋. <Sleeping Horse> 라는 제목의 그림은 이전의 전시에서 전시했던 작품이다. 그 그림에는 죽은 듯이 쓰러져 자고 있는 말이 있고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그 말의 생사 여부를 궁금해했다. 나는 “죽은 줄 알았지만 사실 말은 자고 있던 것이에요.”라고 말했지만 뒤늦게 생각해 보니 그건 순전히 내 추측이었다. 주변 누구도 그 말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니 당연히 죽은 것은 아니라고 지레 짐작했던 것이다. 내가 직접 사실을 확인한 것도 아니면서 나 혼자 그 말의 이미지에 감명받아 작품까지 만들었으니 경솔하기 그지없다.

이렇게 나는 숨 쉬듯 지레 판단하고 알고 있다고 생각한 걸 사실이라 받아들였다. 자신이 아는 것 중 진실보다는 익숙함에 가까운 것이 많다는 걸 잊고 산다. 나의 그림에는 상징적 의미가 강한 대상들이 주로 등장한다. 그들의 상징성이 이야기를 어떻게 만드는지 또 어떻게 변형시키는지, 알고 있던 상징적 의미와 보이는 이미지 사이의 간극이 불편함을 유발하지 않을지 생각한다. 아마 어딘가 편치 않은 감정은 어쩌면 우리의 무의식중에 고착되어 익숙해진 관념들의 반증일지도 모르겠다.

흔히 그림이 없는 책은 이미지를 상상하게 하니 상상력을 키우게 된다 한다. 그런데 우리는 본 적 없는 것을 상상할 수 있을까. 그 반대로 텍스트 없는 이미지는 본 적 없는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사실 잘 모르겠다. 그저 내 그림을 통해 자연스럽게 연상된, 각자의 관념이 가득 담긴 서사가 듣고 싶다.



김영현